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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기둥들 2014

2014. 11.

연극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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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져 가는 선실

 

 

“우리는 지금 이 작품을 여기서 왜 하는가?“ 이 질문은 어떤 작품에서나 나의 출발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나는 무대미술을 한다.

<사회의 기둥들>에서의 대답은?

 

<사회의 기둥들>은 1877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에 의해 쓰인, 인간의 본성과 사회와의 관계를 다룬 희곡이다. 이 작품을 처음 읽으면서, 극중 사건이 한국의 오늘날의 사회와, 그것도 어느 특정 사건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한국명으로 바꾸면 2014년 한국에서 쓰인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탐욕, 특히 사회의 기둥들임을 자처하는 정치경제적 유력자들의 탐욕에 의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밑바닥이 썩어 있는 배 위에 끝없이 탐욕의 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그러다가 대형사건이 하나 터지면 그 부패상이 노출되고, 그 모습에 대중은 분개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회의 기둥들은 썩은 밑바닥을 슬쩍 때워놓고는 계속해서 탐욕의 탑을 쌓아올린다. 그렇게 해서 나라가 망한 지 겨우 백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2014년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 배 안 선실에 갇혀 있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점점 더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나 있는가? 이렇게 기울어지다가 언젠가는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137년 전 노르웨이의 어느 해안가 소도시의 영사 베르니크의 저택 거실에서 일어난 극중 사건을 2014년의 대한민국 관객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나는, 거실을 선실로 바꾸었다. 그리고 점점 기울어져가는 선실 안에서 그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겹쳐보이게 표현하였다.

 

<보이첵>, <사회의 기둥들> 같은 사회성 짙은 번역극들을 대할 때면 항상 시대적, 지역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을 1차 개념으로 삼는다. 위대한 예술작품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삶에 영향을 준다. 과거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타고 있는 기울어져가는 선실이 조금이라도 바로 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4.11.04. 무대미술가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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